1980년 이후 우리나라 대형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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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건

1995년 4월 28일 금요일 오전 7시 52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상인네거리 대구백화점 상인점 신축공사 현장에서 지반공사를 하던 인부가 실수로 가스관을 파손시켰다. 이때 누출된 가스가 하수관을 통하여 대구도시철도 1호선 상인역 공사장으로 유입되어 큰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 후에는 50m에 달하는 건설 현장이 무너져 내렸다.

 

 

 

 

 

 

대한항공 858편 칼기 폭파 테러사건

칼기 폭파사건은 대한항공(KAL) 858기가 1987년 11월 29일 북한공작원 김현희 등에 의해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파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북한이 서울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으켰다. 11월 28일 밤 바그다드발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한 북한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은 시한폭탄과 액체폭발물을 두고 아부다비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는 다음날 14시 5분경 공중 폭파되어 탑승자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체포되는 과정에서 김승일은 독약을 삼켜 죽고 김현희만 살았다. 이 사건으로 북한은 테러국으로 낙인찍히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되었다.

 

 

 

 

 

 

중국 국제 항공 129편 추락 사건

한·일 월드컵을 한달여 앞둔 2002년 4월15일 오전 경남 김해시 삼방동 동원아파트(1026가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갔다. 곧 아파트 뒷산인 신어산(630.7m) 자락 돗대산(381m)에 떨어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들린 폭발음에 놀란 아파트 주민들이 창밖으로 보니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이날 오전 9시40분(한국시각) 중국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을 출발한 중국국제항공공사 129편 항공기는 폭우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 김해국제공항 착륙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김해국제공항 북쪽 4.6㎞ 지점 돗대산 중턱(204m)에 추락했다. 탑승자 166명(승무원 11명 포함) 가운데 130명(한국인 111명, 중국인 19명)이 숨지고 기장 등 36명이 다쳤다.

폭발과 화재로 동체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불탔고, 유전자 검사 결과 100여명의 주검이 뒤섞인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유족들은 주검을 한꺼번에 화장해 100여개의 유골함에 나눠 담아야 했다.

 

 

 

 

이태원 압사 사고

22년 10.29일 서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의 해밀톤 호텔 서편 골목에서 할로윈 축제로 수많은 인파가 몰린 와중에 발생한 압사 사고. 이 사고로 인해 159명이 사망하고 195명이 부상을 당했다.

 

 

 

 

제주항공 사고

아직까지 사건 파악 확인중인 참사 부가내용은 달지 않음

 

 

 

 

대구 지하철 참사 (중앙로역)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는 2003년 2월 18일 화요일 오전 09:55 경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내 전동차에서 발생하였다.
사고원인은 승객의 방화로 발생하였다. 목격자의 진술에 의하면 안심방향 지하철 내에서 열차가 중앙역 정차 후 방화하였으며, 방화 용의자가 우측 좌석 위에 놓인 플라스틱류(신나)의 병 뚜껑을 열어 라이터를 켜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착화되어 화염이 용의자의 옷과 차량 좌석시트에 인화되어 급격히 전동차 내부로 확산된 화재이다.

 

참사는 큰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마주오던 전동차가 멈추지 않고 사고 역으로 진입하는 바람에 불이 옮겨 붙어 피해가 커지는 등 지하철의 비상운영체계에도 큰 허점이 드러났다. 처음 불이 난 전동차보다 마주오다 불이 옮겨 붙은 전동차에서 대부분의 인명피해가 났다. 불이 옮겨 붙은 전동차의 기관사가 엉겹결에 차량문을 닫은 채 대피해 객차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숨진 시신 100여 구가 발견됐다.

 

 

 

 

 

대한항공 801편 추락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사고는 1997년 8월 6일 금요일 01:55 경(한국시간 00:55) 미국령 괌 아가나 공항 인근 5km산중턱(니미츠힐)에서 대한항공 801편(B-747) 기가 착륙을 하고자 접근 중 추락한 사고이다.
추락원인은 기상 및 관제소에 관련해서 사고시간 전후 소나기 또는 폭우, 시정 0.5~5 마일, 구름, 풍속 4~5 노트였으며, 관제반이 사고 당시의 접근관제사 조사하였을 때“최저안전고도 경보장치(MSAW)경고음을 못 들었다” 라는 진술을 확보하였다.
미국의 유력한 전국지인 유에스에이 투데이에서도 이번 추락사고는 중요한 레이더경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기체구조에 관련해서는 최초 좌측날개가 나무를 치고 도로변 송유관에 좌측 날개 밑 바퀴가 부딪혔으며, 도로변 언덕에 1번 엔진이 충돌되어 조종력을 상실함으로써 항공기가 추락하였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칼기 피격사건은 뉴욕발 서울행 대한항공(KAL) 보잉 747 여객기가 1983년 9월 1일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승객과 승무원 26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대한항공 747 민간여객기는 1983년 8월 31일 밤 10시(한국시간) 앵커리지 공항을 출발하여 소련 영공과의 최단 거리가 50㎞ 정도로 가까운 항로를 택하여 비행했다. 9월 1일 오전 3시 26분 소련전투기는 캄차카 앞바다를 통과하는 대한항공기에 미사일을 발사하여 추락시켰다. 이 사건은 사고 항공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하여 소련이 왜 한국의 민간여객기를 격추했는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서해 훼리호 침몰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는 1993년 10월 10일 10시 10분경 위도 앞바다(전북 부안군 위도 앞 해상)에서 발생하였다.
사고원인은 출항 당시 기상은 북서풍이 초당 10~14m 로 불어 파고 2~3m 로 여객선이 출항을 해서는 안 되는 악천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출항하였고, 출항 후 좌현 정횡(배 왼쪽중앙)부분으로 닥치는 파도가 예상보다 높아지자 선장이 뱃머리로 파도를 받기 위해 침로를 60도 회전하여 시속 12노트로 진행하다가 임수도 북서쪽 1.9마일 지점에서 원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남쪽으로 40도 가량 변침하는 등 기기를 무리하게 조작하는 등 운항미숙 및 무리한 기기조작이 원인이었다.

어른 키보다 높은 파도, 정원(221명)보다 141명을 더 태운 배의 앞부분에는 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높은 파도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뚱거리던 여객선은 갑작스러운 키 조작에 뒤집어지고 말았다. 292명이 수장된 대참사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최소한의 안전수칙마저 지키지 않았던 욕심의 결과였다.

 

 

 

 

세월호 침몰 사고

 

2014년 4월 15일 인천항에서 청해진해운 소속의 여객선 세월호가 짙은 안개로 두 시간 지연된 상태로 출항하였다. 오전 7시경 진도 해역으로 들어섰고, 8시 50분경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119 전남소방본부에 선박의 침몰 사실을 최초로 신고하였고, 9시 30분경 목포해경 경비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하였으나, 자력으로 배에서 빠져나온 승객과 선박직 승무원들만 구조하였다.

11시경 안산 단원고등학교는 학부모들에게 “해경으로부터 전원 구조 통보를 받았다.”라는 문자를 보냈고, KBS는 뉴스특보를 통해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전하였다. 그 시각 목포 해경구조대가 선내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강한 조류로 실패하였고, 11시 30분 세월호는 배의 앞부분 일부만 남기고 전복된 채 수면 아래로 침몰하였다. 그리고 4월 18일 오후 1시 30분에 배의 앞부분마저 가라앉아 완전히 침몰하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설계 시에 대단지 상가로 설계되었던 것이 정밀한 구조 진단 없이 백화점으로 변경되어 1989년 완공되었다. 그 후에도 무리한 확장공사가 수시로 진행되었다. 붕괴 조짐이 있었지만 백화점은 응급조치로 대응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설계·시공·유지관리의 부실에 따른 예고된 참사였다. 1년 전의 성수대교 붕괴사건(1994년 10월 21일)과 함께 압축성장의 그림자였다.

 

지상 5층, 지하 4층, 그리고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삼풍백화점은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수개월 전부터 균열 등 붕괴 조짐이 있었다. 1995년 6월 29일 오전에 5층에서 심각한 붕괴의 조짐이 나타났다. 경영진은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1천여명 이상의 고객들과 종업원들이 건물 내에 있었다. 당일 오후 6시 직전에 5층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건물은 먼지 기둥을 일으키며 20여초만에 완전히 붕괴되었다.

 

 

 

 

 

 

순위에 대한 기준은 없고 희생자분들 수가 세자리 이상 넘어가는 사건/사고만 대체적으로 다뤄 봤습니다.

 

 

참고 : 국가 기록원 내용 첨부

사진 : 사건/사고 사진 첨부

 

 

모든 희생자 분들께 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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